불혹이란 어떤 마음일까요?


우리는 40대를 불혹이라고 부릅니다.
풀어서 쓰면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나이라는 뜻입니다.

30대는 이립 뜻을 세우는 나이라고 부르고,
40대는 불혹,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나이라 부르고,
50대는 지천명, 하늘의 뜻을 아는 나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30대에 뜻을 세우는 사람이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될까요?
20대에 대학에 쫓기듯이 들어가서,
남자라면 군대를 다녀오고, 복학하면 23살 내지 24살,
휴학 한번하자면 25살이 되어버리고,
졸업하면 26살, 취업 준비 1~2년 해버리면 28살이 훌쩍 넘겨버립니다.

이제 사회적응하고 직장적응하면 30대, 
모아놓은 돈도 없는데, 사회에서는 결혼을 강요합니다.
그리고 아이를 강요합니다.
어느정도 돈을 모으고 자리가 잡히는 나이는 35세 정도가 되어야지 됩니다.
35세에는 새로운 만남을 가질 흥미도 관심도 없는 나이가 되어버릴 수 있는 어중간한 나이입니다.

40대는 어떨까요?
40대는 앞에서 말했듯이 불혹이라고 합니다.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나이라는 뜻이죠.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본다면,
불혹이라는 세상의 어떤 말도 더이상 듣지 않겠다는 나이가 되어버립니다.
내 생각대로, 내 주관대로 밀고 나가는, 일명 내 쪼대로 살겠다는 나이,
다른 사람 눈치볼 필요도 없이 나씨나길 또는 개썅마이웨이로 살겠다는 굳은 의지입니다.

귀닫고 살아가니 반 강제적으로 불혹이되어버립니다.
주위에서 조언을 하여도 듣지않고,
충고를 하여도 듣지 않고,
사랑을 속삭여도 듣지 않는 나이,
불혹입니다.

내가 듣지 않으니 유혹에 흔들일 일도 없고, 넘어갈 일도 없지요.
내 말만하고, 내 주관만 밀어붙이게 되면,
나는 꼰대가 되어갑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꼰대로 불러도 이미 불혹이 되면 알아채지 못합니다.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렇게 만든 것은 스스로의 잘 못일까요?
아니면 세상의 잘못일까요?
사실 저도 잘 모릅니다.
그렇게 변해버린 자신을 탓하기에는 스스로가 너무 불쌍하고,
그렇다고 세상을 탓하기에는 변화를 선택한 것은 나 자신이고,

불혹의 나이, 과연 유혹에 안흔들린다는 것이 마냥 칭찬은 아닌거 같습니다.
40살 이라도 가끔은 유혹에 흔들리는 모습, 못이긴척 회사를 땡땡이치고 나가거나,
갖고 싶은 장난감을 자녀에게 주는 척 사거나 하는 모습이 필요한 건 아닐까요?

하지만 우리 주위에는 이런 40대 보다는 불혹을 즐기는 40대, 
라떼는 말이야를 외치는 40대가 더 많은거 같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말로는 뻔하겠지만, 지금이라도 정신차리고 
나 때는 말이야보다는 라떼 한잔 건내는 모습이 필요한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마흔을 바라보는 마음


옛날에는 20대만 보아도 엄청난 어른이라고 보였고,
20대가 된 후에는 아직 20대는 법적으로 성인이지만, 
아직 애기라고 느꼈다.

20대에서 바라본 30대는 어른으로 보였지만,
막상 30대가 된 후 30대도 아직 배워야할 것이 많은,
어른스러운 척 연기를 해야 하는 어른일 뿐이라고 느껴졌다.

이제 40대를 바라보는 시점에서
과연 나는 40대에는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정신역동의 창시자 칼융은 이렇게 말했다.
"인생은 마흔에야 비로소 시작된다. 그때까진 우린 그저 탐구했을 뿐이다."

40대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어떻게 40대를 준비해야 하는 것일까?

책 마흔 마음공부를 시작했다에 보면 4가지 정도를 권유한다.

첫번째, 다시 학생으로 돌아갈 것.
무조건 학문적인 공부를 하라는 것이 아닌, 
인생을 살아면서 세상에는 아직 경험하지 못한게 많다는 것을 느끼라는 것이다.

실제로 내 삶속에서 느끼는 경험들은 내가 선택해서 경험하는 경험일 뿐이다.
관심을 가지는 것은 경험하고, 관심이 가지 않는 것들은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이런 관점에서 내가 무관심한 것들에게도 관심을 가지며 배우라는 뜻일 것이다.

두번째, 해보지 않은 일을 도전하라.
나이를 먹으면서 느끼는 것은, 왠만한 맛집보다 프랜차이즈 식당이 더 낫다는 것이다.
그만큼 바쁜 시간에 새로운 것을 찾는 것 보다는 검증된 식당에서 조금은 미식을 포기하더라도
안정된 맛을 즐기는게 낫다고 느낀다.

더군다나 출퇴근 길도 이 시간에는 막히는 것을 알면서도 익숙하고 편한길을 선택하는 모습,
회사 복도도 항상 가는 길만 가는 모습, 심지어 화장실 변기도 항상 쓰는 것만 쓰는 것들까지
익숙함에 익숙해져버린 모습이다.


새로운 것은 불편함이 따른다. 불편함은 어쩌면 우리의 뇌를 일깨우고, 몸을 일깨울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속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해주는 것일 수 있다.

세번째, 다체로운 나를 만들라.
직장생활을하면서 우리는 직장에서 나의 명함, 집에서 누구 아빠, 누구 남편의 명함 이렇게 3가지를 가지고 살아간다.
하지만 동호회활동을 하면서, 아니면 게임 길드 활동을 통해 또다른 나를 만들어 보자.
스포츠 동호회나 게임 길드에서는 오롯히 나라는 사람에게만 집중할 뿐
나의 직장이 무엇인지에 대해 집중하지 않는다.

이렇게 다양한 나를 창조하면 할 수록, 한군데서 오는 스트레스를 효과적으로 분산시킬 수 있을 것이다.

네번째, 가까운 사람과 연대하기
나이가 들면,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일에 치이고, 가족에게 헌신하고 그렇게 시간을 할애하다보면, 정작 남는 시간이 별로 없다.
이 때 새로운 관계를 많들어 인간관계를 넓히는 것도 좋지만,
기존의 관계를 더욱 깊히 발전시켜 더 돈독하게 만드는 것도 참좋을 것이다.

무작정 새로운 인간관계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있는 인간관계에서 조금 더 깊게 들어가 유대감을 강화시키면,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더 늘어나는 것이기에 우리의 마음을 조금더 건강히 지킬수 있을 것이다.

나의 마흔은 두렵지만 어떨지 기대해본다.

마음이 있기에 우린 사람입니다.


안녕하세요. 언제나 마음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마음과 관련된 글이 많습니다.
이런 말을 듣고 있노라면 "어떻게 이렇게 딱 들어 맞는 글을 만들 수 있을까!" 라는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예를 들어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라는 글도 있구요.
"화장실 들어 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리고 '오만가지 생각'이라는 것 말도 있습니다.
어느 글에서 읽었는데 실제로 우리가 하루에 하는 생각이 5만 개 정도는 된다고 하니,
옛날 사람들의 지식은 가히 놀랍습니다.

여자의 마음은 갈대라는 글이 있듯이,
실제로 우리의 마음은 갈대처럼 조그만 바람에도 흩날리게 됩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조금만 섭섭하게 하면 미워 보이고,
자신을 매일 힘들게 하는 직장 상사라도 조그만 칭찬 하나에 갑자기 그동안 섭섭했던게 사라지기도 합니다.

만약 마음이 갈대가 아니라, 뿌리 깊은 나무처럼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찔러도 피 한방울도 안나올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 조차, 무너지는 것은 큰 사건 사고가 아닌
작은 것 하나 입니다.

절대 나를 쳐다 보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일지라도, 큰 선물이 아닌 작은 나의 행동에 나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 처럼 말이죠.

우리의 마음은 참 복잡한 기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마음이라는 것은 신체 어느 기관에도 없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마치 제 여자친구 처럼요.)

그런 보이지는 않지만 실존한다는 그 '마음'이 항상 편안하고 고요하다면 좋겠지만,
작은 바람 하나에 흔들리는 나무가지처럼, 작은 돌맹이 하나에 흐트러지는 호수 처럼
우리를 슬프게도, 기쁘게도 합니다.

그 마음, 그런 이유로 우리는 사람이라고 불리우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한 마음과 간사한 마음 Alwaysmind

안녕하세요.


언제나 마음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감사한 마음을 가진다면, 세상이 전부 아름다워 보인다고 말이죠.

하지만 우리가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언제나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는 없죠.

오늘은 감사한 마음과 간사한 마음 그 간극에 대해 말해보려고 합니다.


직장을 그만 두고 가족 회사로 입사했습니다.

전 직장이 어느 정도의 시스템이 갖추어진 회사였던 지라, 

일하는 시간과 휴식 시간은 물론 일하는 절차나 방식이 시스템화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족회사는 직원 2명이 전부인 소규모 회사이죠.

특별히 명문화된 시스템이 있기 보다는 기존의 해왔던 방식대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 입니다.


새로 전입 온 사람에게는 명문화된 시스템이 없다보니

직원들이 이미 습득한 관습을 익히기에는 

상당한 오랜 시간이 걸리는 단점이 있습니다.


처음 부터 가장 걸렸던게 시간이었습니다.

사장님(그러니까 저희 아버지이죠)의 철학은 출근은 30분 전,

오후 일 시작은 10분전이라는 철칙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하는 직원 분들에게는 

30분 + 10분 총 40분을 더 일해야하는 시간인거죠.



그래서 사무실과 달리 현장 내부에 있는 시계는 10분 정도 빨랐습니다. 

왜냐면 아침 30분 전에 와서 30분의 업무를 더하는 것도 그렇지만,

10분을 빨리 맞추어놓으면 20분만 더 일하고,

10분 일찍 밥먹고 10분 일찍 일하는 셈이 되니,

사장님 입장에서는 사장님이 원하는 방식의 일이 되는 셈이니 서로 윈윈이었습니다.


업무 마무리도 10분일찍하게 되어 정리하면 5분 정도 일찍 퇴근하는 셈이었으니 

결국 30분이 아닌 20분에서 25분만 더 추가 근무를 하게 된 셈이죠.

다만, 저의 시계와는 좀 달랐다는게 문제였습니다.

저의 시계는 10분이 늦고, 현장의 시계는 10분이 빨랐습니다. 

그러니 저는 10분 늦게 먹고 10분 빨리 일을하고 손해가 있었죠. 

그래서 표준시에 맞춰서 현장 시계를 돌려놨습니다.


일하는 직원들이 불만은 있었겠지만, 

사장의 아들이 그리 해놓은 거니 크게 말을 못했을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도 가족 회사에서 일한 시간이 흐르고, 

문득 흐르지 않는 시계를 보면서 처음 왔을 때 

10분 빨랐던 이유를 그 때서야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비합리적인 10분을 이해할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으 흐린 뒤 어느 덧 저도 회사에 동화되고

적응된 시점에서 빠른 10분의 의미를 깨닫게 되고, 

빠른 10분이 감사함으로 다가 왔습니다.


빠른 10분의 감사한 마음으로 다시 시계를 몰라 5분정도 일찍 돌려놨습니다. 

갑자기 빨라지면 눈치 챌거 같아서요. 

조만 간 5분더 빨리 맞춰놓고 원래대로 돌려놓으려고 합니다.


감사한 마음과, 간사함 마음.

이것이 우리 마음의 본질이 아닐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이란 무엇일까요? 사실 저도 모릅니다.. Alwaysmind

요즘들어 심리학에 대해 관심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몇 년 전부터 심리학에 대한 열풍이 불었고, 아들러의 개인심리학 부터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까지 많은 심리학 이론이 우리 삶을 파고 들었습니다.

다행인건지 아님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책을 통해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 점점 많아졌고, 책을 통한 이론적 바탕으로 자신의 마음을 진단하고 분석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을 정복해야 하는 대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마음을 아이처럼 잘 보듬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무엇이 맞는지, 사실 필자도 심리학을 전공하였지만 잘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란 천 개, 아니 수 만개의 얼굴이 있어서 다양한 상황과 환경에서 마음은 독자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이란 이성의 지배를 받아 나서지 않아야 할 곳에서 나서지 않고, 나서야될 곳에서 나섭니다.

흔히 말해 낄낄빠빠(낄 때 끼고, 빠질대 빠져라)라고 불리는 것 입니다.

하지만 마음은 이성과는 전혀 맥락을 같이하지 않습니다.

이러면 안되는 상황에서 마음이 동작해버립니다. 앞에서 말한 낄낄빠빠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말이죠.

마음은 꼭 우리의 이성과 감정의 통제를 받지 않는 말썽꾸러기 아이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마음은 때로는 강하게 몰아세워야 할 때도 있을 것이고, 

때로는 애인을 다루거나, 아이를 다루듯이 잘 구슬려서 같이 움직이여야 할 때도 있을 것 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칼로 자르듯이 너무 마음을 한가지 편향된 생각으로 다루지말아야 할 것 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어린 아이도 아닐 뿐더러, 싸워서 이겨야 할 대상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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